아이가 여러 가지 지시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: 작업기억을 고려한 지시법
가방만 들고 나온 아이
“방에 가서 가방 갖고 오고, 물통 채워오고, 숙제 꺼내놔”라고 세 가지를 한 번에 시켰는데, 아이가 방에서 나올 때 손에 든 건 가방뿐이었습니다. “왜 나머지는 안 가져왔어?”라고 물으니 아이도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. 분명 다 듣고 대답도 했는데 말입니다.
아이가 여러 가지 지시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
찾아보니 이런 모습은 흔하게 관찰되는 현상이고, ‘작업기억’이라는 개념과 관련이 있었습니다. 작업기억은 정보를 잠깐 붙잡아두면서, 동시에 그 정보로 뭔가를 처리해야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. 단순히 저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과 처리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점에서, 그냥 기억력과는 조금 다릅니다. 이 용량은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고, 나이가 들면서 점진적으로 늘어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. 세 가지 지시를 순서대로 들을 때, 마지막 지시를 듣는 순간 이미 앞의 지시를 붙잡아두는 데 용량을 쓰고 있었다면, 그중 일부는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 있습니다. 지시를 안 들어서가 아니라, 붙잡아두는 용량을 넘어선 것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.
우리 아이 상태 확인하기
먼저 아이가 정말 안 들은 건지, 듣고도 놓친 건지 확인했습니다.
부모: “아까 세 가지 얘기했잖아, 뭐였는지 기억나?” 아이: “가방이랑… 또 뭐였죠?” 부모: “듣고 있었어?” 아이: “들었는데, 하다 보니까 까먹었어요.”
‘듣긴 들었는데 까먹었다’는 반응이 나온다면, 주의력 문제라기보다 작업기억 용량을 넘어선 지시였을 가능성을 먼저 살펴볼 만합니다.
작업기억을 고려한 지시법 3단계
1단계. 한 번에 지시하는 개수 줄이기
세 가지를 한꺼번에 말하지 않고, 감당할 수 있는 개수로 나눕니다.
부모: “오늘은 딱 두 가지만 부탁할게. 가방이랑 물통.” 아이: “그거면 돼요? 좋아요.” 부모: “응, 이거 하고 나면 다음 거 알려줄게.”
2단계. 순서대로, 하나 끝나면 다음 지시하기
한꺼번에 나열하는 대신, 하나가 끝난 뒤 다음 지시를 줍니다.
부모: “가방 먼저 가져올래? 그거 하고 오면 다음 거 얘기해줄게.” 아이: “네!” (가방을 가져온 뒤) “이제 뭐예요?” 부모: “좋아, 이번엔 물통 채워올래?”
3단계. 아이에게 지시를 다시 말해보게 하기
지시를 준 직후, 아이가 이해한 대로 다시 말해보게 합니다.
부모: “방금 뭐 하기로 했는지 한번 말해볼래?” 아이: “가방 갖고 오고… 그다음에 물통이요.” 부모: “맞아, 그대로 하면 돼.”
유의사항
- 지시 개수를 줄이는 게 아이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,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나눠주는 것임을 부모도 함께 받아들입니다.
- 다시 말해보게 하는 것이 매번 필요한 건 아니고, 특히 놓치는 일이 잦을 때 확인 차원에서 활용합니다.
- 나이가 들면서 작업기억 용량은 자연스럽게 늘어나므로, 지금 개수를 줄이는 게 평생 그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.
하나씩 나누니 달라진 것
한 번에 지시하는 개수를 줄이고, 순서대로 나눠서 전달한 뒤 달라진 게 있었습니다.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말했을 때는 하나만 하고 끝났던 일이, 두 가지씩 나누니 둘 다 해내는 날이 늘었습니다. 아이가 안 듣는 게 아니라, 담을 수 있는 만큼만 담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나니 지시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.
참고한 연구 자료
- Gathercole, S. E., Durling, E., Evans, S., Jeffcock, S., & Stone, S. (2008). Working memory abilities and children’s performance in laboratory analogues of classroom activities. Applied Cognitive Psychology, 22(8). — 5~6세 아이들에게 여러 물건을 순서대로 다루는 지시를 준 연구에서,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는 정확도가 작업기억 능력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.
- Gathercole, S. E., & Alloway, T. P. (2008). Working Memory and Learning: A Practical Guide for Teachers. Sage. — 작업기억이 약한 아이들이 교실에서 여러 단계의 지시를 완수하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정리한 실무 지침서로, 지시를 짧고 단순하게 나누는 것을 주요 대응 방법으로 제시합니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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